학교 영어를 열심히 따라갔는데 왜 레벨 테스트에서 낮은 결과가 나올까요? 저는 학원에서 초등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매년 3월이면 이 질문을 들고 오는 학부모가 반드시 생깁니다. 처음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는데, 지금은 그 이유를 꽤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학교 교육과정이 '최후의 마지노선'인 이유
학교 수업은 구조적으로 멜팅팟(melting pot)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멜팅팟이란 다양한 수준의 학생들이 하나의 공간에서 하나의 커리큘럼을 따라가는 환경을 의미합니다. 상위권 학생도, 기초가 부족한 학생도 같은 교실에 앉아 있으니, 교사가 아무리 뛰어나도 수업의 난이도와 속도는 평균에 맞춰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직접 가르쳐보니 이 현상이 참 선명하게 보입니다. 학교 영어 수행평가는 항상 A를 받는데, 막상 독해 지문 하나를 줬더니 대의파악 문제를 연속으로 틀리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글 자체를 읽는 디코딩(decoding) 능력, 즉 글자를 소리로 변환하는 기초 읽기 능력은 있는데, 지문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는 리딩 컴프리헨션(reading comprehension)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리딩 컴프리헨션이란 단순히 단어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글 전체의 논리 구조와 핵심 메시지를 파악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전형적인 단기 암기 위주 학습의 결과였죠.
그 아이에게 저는 그때부터 짧은 원서 지문을 매 수업마다 읽히고, 다 읽고 나면 반드시 "이 글이 무슨 말 하는 거야?"를 말로 설명하게 했습니다. 처음엔 버벅거리던 아이가 두 달 지나니 확 달라지더라고요. 이 경험이 저에게 확신을 줬습니다. 학교 교육과정은 최소한의 기준, 즉 마지노선이고 그 위에 무언가를 더 쌓지 않으면 중학교,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을요.
문제는 이 구조가 교사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공립학교 영어 교사는 임용고시라는 매우 높은 문턱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토익 950점 이상이 기본으로 깔리고, 영어 라이팅과 스피킹 능력도 검증받고 들어옵니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 배치되면 티칭(teaching) 외에 행정 업무, 생활지도, 각종 민원 응대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한국교육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교사의 업무 시간 중 수업 준비와 직접 교수 활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절반을 넘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이 지적되어 왔습니다(출처: 한국교육개발원). 우수한 인재가 들어와도 그 역량을 지속적으로 발휘하기 어려운 환경이 구조적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학교 선택권 확대, 즉 자립형 사립고나 차터스쿨(charter school) 방식의 도입을 논의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차터스쿨이란 공적 재원을 받지만 일반 공립학교와 달리 독립적인 커리큘럼 운영이 가능한 학교 형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평준화 기조로 굳어진 한국 공교육 환경에서 이 방향으로의 전환은 선거 여러 번을 거쳐야 할 만큼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투트랙 학습이 현실적인 이유, 그리고 초등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현장에서 매일 목격하는 데이터로 답을 드릴 수 있습니다. 학교 교육과정만 따라간 아이와, 학교 외에 추가적인 읽기 훈련을 병행한 아이가 중학교 진학 후 보여주는 격차는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투트랙(two-track) 학습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투트랙이란 학교 교육과정이라는 기본 트랙 위에, 수능이나 내신 시험이 요구하는 실질적인 독해력과 어휘력을 키우는 별도의 트랙을 동시에 운영하는 학습 방식을 말합니다. 학교 수업만으로는 이 갭(gap)을 메울 수 없다는 건, 공교육 내부를 16년 경험한 현직 교사도 인정하는 현실입니다. 슬프지만 그게 지금 우리 교육의 구조입니다.
저는 항상 초등 학부모님들께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하는 영어책 읽기가 나중에 수능 지문 읽는 체력이 됩니다." 믿는 분들은 꾸준히 원서 읽기를 유지하고, 안 믿는 분들은 문제집으로 방향을 틀죠. 그 차이가 중학교 가면 눈에 띄게 나옵니다. 제가 직접 관찰한 결과입니다.
리딩 레벨(reading level)이라는 개념이 중요합니다. 리딩 레벨이란 학습자가 독립적으로 이해하며 읽을 수 있는 텍스트의 난이도를 수치화한 지표로, AR 레벨이나 렉사일(Lexile) 지수 등으로 측정합니다. 초등 때부터 리딩 레벨을 조금씩 올리며 원서를 읽히는 것이, 중2까지는 지속돼야 고등학교에서 길어진 지문을 버텨낼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리딩 레벨 훈련이 안 된 아이는 고등학교 수능형 장문 지문 앞에서 무너지는 경우를 저는 반복적으로 봐왔습니다.
그렇다면 초등~중등 단계에서 현실적으로 어떤 순서로 접근하면 좋을까요. 제가 강사로서 실제로 권하는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 교과서 지문을 소리 내어 읽고 의미를 파악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 본인이 좋아하는 원서부터 시작해 리딩 레벨을 점진적으로 높여간다
- 중2까지는 긴 호흡의 원서 독서를 유지하고, 중3부터는 고등 어휘와 문법을 병행한다
- 읽은 내용을 말로 설명하는 훈련을 꾸준히 넣는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르면 영어 교과에서 의사소통 역량과 비판적 사고력 함양을 핵심 목표로 제시하고 있지만(출처: 교육부), 실제 평가 구조가 이 목표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한, 학교 수업 하나만으로 입시 준비가 완성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아이에게 필요한 준비를 제때 해주는 첫걸음입니다.
결국 공교육을 비판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공교육의 역할은 보편적 기준을 제공하는 것이고, 그 위에 무엇을 더 쌓을지는 각 가정이 판단해야 합니다. 저는 AI 시대일수록 단순 지식 암기보다 독해력과 사고력 기반의 학습이 더 중요해진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기초는 초등 때 원서 한 권씩 읽히는 습관에서 시작됩니다. 지금 당장 화려한 커리큘럼이 아니어도 됩니다. 꾸준한 읽기 습관 하나가 몇 년 후 가장 큰 차이를 만들어냅니다.